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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기증품’ 대표 작품 소개

by 청주일보TV 20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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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일보】 박창서 기자 =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281×568cm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적 작가로 평가받는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중학교 시절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니혼대학 예술학부에서 공부한 후 1937년에 귀국했다.

유학 시절에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단체전인 니카텐(二科展, 이과전)과 자유미술가협회전 등에 출품했다.

김환기는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유영국, 이규상 등과 함께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한국적 전통과 정서를 결합하여 새로운 조형의식을 추구한 미술동인단체인 ‘신사실파(新寫實派)’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는 1956년에 파리로 떠나 3년간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63년에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한 뒤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국제적으로 활동하였다. 김환기의 작품은 한국적 정서가 드러나는 자연과 사물을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었으며, 뉴욕으로 간 이후에는 완전히 추상화됐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색면으로 분할된 배경에 사슴, 여인, 도자기 등을 단순화된 형태로 그려 배치한 작품이다. 도자기를 들고 있는 반라의 여인들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이 시기 작가의 작품 중에서 상당히 대형작품에 속하며, 당시 그가 한국의 전통미에 주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130×97cm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은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고, 193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와 유화를 출품해 여러 차례 입선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 대한미술협회전 등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국전의 추천 작가와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박수근은 광복 이전에는 주로 농촌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됐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어렵게 생활했으며, 서울 거리의 풍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박수근은 노동하는 여인의 모습을 즐겨 그렸으며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삼기도 했다. <절구질하는 여인>은 아이를 등에 업고 절구질하는 여인의 모습을 화면 가운데 클로즈업하여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갈색조를 띠는 화면에 단순하고 평면적인 형태로 대상을 묘사했다.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만들어 낸 표면의 거친 질감에서 소박한 정취가 느껴진다.

 

박수근, <농악>, 1960년대, 162×97cm

 

<농악>은 흥겨운 동작으로 농악기를 연주하는 인물들을 그린 것으로, 원근과 명암을 배제한 평면적인 화면 구성 및 단순한 인물묘사가 드러난다.

작가는 전면적으로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만들어 낸 화강암 같은 질감의 표면 위에 은은한 선과 엷은 색채로 농악패의 모습을 표현하여 통일감 있고 담백한 화면을 구현했다.

 

이중섭, <황소>, 1950년대, 26.4×38.7cm

 

평안남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평양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후, 정주에 있던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임용련에게 서양화를 배웠다.

1935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데이코쿠미술학교와 분카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자유미술가협회전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귀국 후에는 한국전쟁 때문에 극심한 가난 속에서 피난 생활을 했으며, 전쟁 중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가면서 가족 간의 이별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작품의 주된 주제가 됐다.

전후(戰後)에는 돈을 모아 가족을 만나려는 생각에 활발히 작품을 제작하며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질환 등에 시달리며 1956 4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황소>는 강렬한 붉은색 배경에 황소가 고개를 틀고 울부짖는 듯한 순간을 그린 것으로, 머리를 화면 가득 묘사함으로써 소가 내뿜는 힘찬 기운을 강조한 작품이다.

강한 선묘는 소의 동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거친 붓놀림과 강렬한 색감은 표현주의적인 경향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작가가 헤어진 가족과 곧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당당한 기세가 화면에 드러난다.

끌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Le Bassin Aux Nympheas>, 1919-1920, 100×200cm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등과 교류했으며, 1873년에는 이들과 함께 무명예술가협회를 결성했다.

협회의 첫 번째 전시에 출품했던 <인상, 해돋이>(1872)를 두고 비평가 루이 르로이(Louis Leroy)가 조롱의 의미를 담아 사용한 ‘인상주의’라는 말이 그룹의 이름이 됐다.

모네는 1886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1890년 이후부터는 <건초더미>, <포플러 나무>, <루앙 대성당>, <수련> 등의 연작을 제작했다.

그는 이 연작들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표현했다.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으나 끝까지 인상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며 작업을 지속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의 자택에서 연못에 핀 수련을 주제로 25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수련>은 이 연작 중 하나이다. 작가는 가로로 긴 화폭에 흰색, 초록색, 보라색을 겹쳐 바르는 방식으로 화면 가득 연못의 수면과 수련만을 묘사했다. 수평선을 드러내지 않은 평면적 구성을 통해 수면에 반사된 빛만을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작품 제작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는데, 이 작품은 작가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점차 잃게 된 후기 작업의 추상화된 경향을 보여준다.

 

마르크 샤갈,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Les amoureux aux bouquets rouges>, 1975, 92×73cm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의 유대인계 가정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그는 1910년부터 파리에서 지내면서 초기에는 입체주의와 야수주의의 영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1914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후 고향인 러시아의 비테프스크로 돌아가 미술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으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의 갈등으로 1922년에 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돌아갔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태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피신했다가 1948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샤갈은 사랑과 동경, 그리움과 같은 주제를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와 눈비신 색채로 표현했으며, 색채의 마법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에는 붉은색의 꽃들이 꽂혀 있는 화병이 화면의 중앙에 크게 그려져 있고 양옆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연인 한 쌍과 마을의 풍경, 과일바구니와 와인병 등의 정물이 작게 묘사됐다.

연인과 꽃이 함께 묘사된 도상은 샤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의 배경과 빨간 꽃의 색채 대비가 강조되며, 몽환적인 분위기와 밝고 강렬한 색채의 사용 등에서 샤갈 작품 특유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Family of marsupial Centaurs>, 1940, 35×30.5cm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출생하여 마드리드의 왕립미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초기에는 큐비즘 등 당시의 전위적 미술운동에 심취했으며 1929년에는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입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1948년에 스페인으로 귀국했다. 그는 회화와 조각, 사진뿐만 아니라 비평과 시, 영화 등을 제작했으며 꿈과 무의식, 성(性), 종교, 과학 등을 창작의 주된 주제로 삼았다. 

달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오토 랑크(Otto Rank, 1884-1939)에게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랑크는 출생 자체가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일 수 있다는 이론을 제기했으며, 정신분석학을 전설과 신화, 예술과 창조성의 영역으로 확장한 학자이다. 달리는 랑크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 출생 전 기억이 있다고 믿었다.

작품에는 신화 속 존재인 켄타우로스들이 출산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복부에 난 둥근 구멍에서 차례로 아기들을 꺼내고 있는 이 장면에 대해 달리는 자서전에서 “엄마의 자궁이라는 낙원에서 나올 수도 되돌아갈 수도 있는 켄타우로스가 부럽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에서 그린 작품이지만 배경의 바다는 작가의 고향인 카탈루냐의 해안의 모습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정교한 테크닉과 균형감 있는 구도가 돋보이는 이 작품에 대해 달리는 스스로 고전주의 양식으로의 회귀를 드러낸 작품이라고 밝혔다.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시장 Marché de Pontoise>, 1893, 59×52cm

 

프랑스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인 세잔과 고갱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서인도 제도에서 태어난 그는 1855년에 그림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1870년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으며 모네와 교류하며 영국의 풍경화를 연구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파리 퐁투아즈에 정착하여 풍경화를 제작했다. 1874년에 제1회 인상파그룹전에 참가한 이후로 매회 지속적으로 출품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퐁투아즈 시장>은 퐁투아즈의 시장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짧은 붓터치로 대상을 표현한 방식은 이후 쇠라가 사용한 점묘법과 유사하다. 피사로는 루브시엔느에 있던 집이 전쟁 때 파괴된 후 파리 북서쪽의 퐁투아즈로 거처를 옮겼는데, 퐁투아즈의 전원 풍경이나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이 작품은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과 구경하는 사람들을 빼곡히 묘사하고 있어, 혼잡한 시장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폴 고갱, <무제 Untitled>, 1875, 114.5×157.5cm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이다. 파리에서 증권거래원으로 일하던 그는 회화에 흥미를 느껴 일요일마다 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이후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으나, 1880년대 중반부터는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현실과 상상을 접목한 종합주의를 창안했다.

또한, 원시적인 것에 관한 관심으로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에서 머무르며 소박하고 순수한 예술을 추구했다. 그의 작품은 원주민의 천진함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며, 그 안에 표현된 상징성과 비()자연주의적 경향이 야수주의, 독일 표현주의 등 20세기 현대 회화가 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제>는 고갱이 전업 화가로 활동하기 전, 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기에 제작한 작품이다. 이 시기에 작가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는데, 특히 센강 주변의 공장, 항구, 다리 등을 안정적인 구도로 묘사한 작품이 많다.

이 작품은 센강의 강둑을 걸어가는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화면 중앙의 크레인과 배 두 척이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주며 안정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다. 고갱이 자신의 독자적 화풍을 형성하기 이전의 초기작으로 사실적인 묘사에 바탕을 둔 인상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책 읽는 여인 La Lecture>, 1890년대, 44×55cm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중 한 명으로, 빛과 색채를 조합하여 일상의 풍경과 여성, 아이들을 주로 그렸다.

1862년에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하여 클로드 모네 등의 화가들과 교유하며 센강 주변 풍경을 그림으로 옮겼다. 1874년부터 1882년까지 총 4회의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1879년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1881년에 이탈리아 여행 중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의 그림과 폼페이 벽화에서 감명을 받았으며, 이후 작품에서는 원색 대비와 명확한 형태감이 돋보이는 방식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등 화풍에 변화를 보였다.

<책 읽는 여인>은 르누아르가 즐겨 그린 소재인 독서를 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화면에는 작가 특유의 부드러운 붓 자국과 화사한 색채감이 드러나며 자연광의 색감을 눈에 보이는 대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밝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여인의 모습에서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라는 르누아르의 예술관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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