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의 전략적 재구성과 역량 중심 기록의 본질
【청주일보】 이성기 기자 = 대한민국의 대입 지형이 유례없는 변곡점에 섰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본격적인 적용과 함께 고교 내신 체제가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전환되면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신 1등급이 기존 4%에서 10%까지 대폭 확대됨에 따라, 상위권 대학들에게 내신 성적은 더 이상 ‘압도적인 변별력’을 제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량적 변별력의 약화’는 역설적으로 학생부 종합전형과 상위권 대학의 교과전형에서 ‘정성적 기록’의 가치를 유례없이 격상시켰다.
이제 대학은 단순한 성적표 뒤에 숨겨진 학생의 학업적 깊이와 탐구의 질을 확인하기 위해 더욱 정교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 핵심에 바로 수행평가가 있다.
최근 동국대학교가 발표한 ‘수행평가 영역명 설정 가이드북’은 내신 등급만으로 학생을 가려낼 수 없게 된 대학들이 무엇을 통해 변별력을 확보하려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등급’의 시대에서 ‘서사’의 시대로: 기록이 곧 실력이다
내신 5등급제 체제에서 1등급을 받은 학생은 과거의 1, 2등급을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된다.
대학 입장에서는 ‘누가 진짜 실력자인가’를 가려내기 위해 학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 바로 수행평가 과정이다.
과거의 수행평가가 단순히 과제 제출 여부를 확인하는 요식 행위였다면, 지금의 수행평가는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학생이 어떻게 자기 주도적으로 해석하고 심화했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결과물인 보고서보다 그 보고서를 쓰기 위해 학생이 어떤 학문적 의문을 품었는지, 그리고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학술적 경로를 거쳤는지에 더 큰 관심을 둔다.
특히 생성형 AI가 보편화된 현시점에서, AI가 복제할 수 없는 ‘학생만의 고유한 사유의 궤적’은 내신 등급의 불충분한 변별력을 보완하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
영역명 설정이 바꾸는 학생부의 품격 : 구체적 사례 분석
동국대학교 가이드북이 강조하는 핵심은 수행평가 ‘영역명’의 구체성이다.
영역명 자체가 평가의 방향성을 결정하며, 사정관에게 전달되는 첫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내신 변별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영역명을 어떻게 전환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전문성은 완전히 달라진다.
교과별 서사적 전환 사례를 살펴보자.
우선 통합사회의 경우, 단순히 ‘사회적 소수자 차별 조사’라고 명명하던 것을 ‘사회적 소수자 인권 실태 분석 및 다문화 수용성 제고 방안 탐구’로 고도화해야 한다.
이는 학생이 특정 집단의 어려움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계와 사례를 통해 실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정책적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공동체 역량을 시사한다.
대수, 수학1 역시 마찬가지다.
‘지수와 로그 문제 풀이’와 같은 기능적 명칭 대신, ‘지수함수 모델링을 활용한 미세먼지 농도 예측 및 데이터 분석’으로 정의할 때 비로소 수학적 도구를 실생활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입증된다.
이는 대학이 학종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수학적 추론 능력'과 '지식의 전이 역량'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영어교과에서는 ‘영미 문학 감상’이라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영미 시에 나타난 사회적 갈등 구조 분석 및 현대적 재해석을 통한 비판적 영작’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텍스트를 해독하는 수준을 넘어 문학적 상징을 사회학적으로 읽어내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논리적으로 출력하는 고차원적 언어 구사력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생명과학분야는 ‘유전 기술의 이해’라는 단순 이해 단계를 ‘유전공학의 윤리적 쟁점 비판적 고찰 및 미래 보건 의료 정책 제언’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는 과학적 지식이 기술적 성취에 머물지 않고 인간 윤리와 공공 정책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하며, 학생의 폭넓은 지적 지평과 융합적 사고를 사정관에게 각인시킨다.
3. 전략적 수행평가 설계를 위한 삼각 함수 : 동사, 역량, 확장
성공적인 수행평가를 위해 학생과 교육자가 반드시 공유해야 할 전략적 지향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록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역동적인 동사(Action Verb)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한 ‘조사’나 ‘작성’과 같은 정적인 표현들은 학생을 수동적인 지식 수용자로 머물게 한다. 대신 지식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능동성이 드러나는 ‘분석’, ‘제언’, ‘설계’, ‘구현’, ‘비판적 성찰’과 같은 단어들을 수행 과정 전반에 녹여내야 한다.
대학은 학생이 지식을 단순히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 지식을 도구 삼아 무엇을 ‘실천’했는지를 통해 학업적 잠재력을 가늠한다.
둘째, 탐구의 방향성을 각 교과의 핵심 역량과 정교하게 일치시켜야 한다.
수학의 ‘추론’, 사회의 ‘공동체 의식’, 과학의 ‘탐구 설계 능력’ 등이 수행평가의 명칭과 활동 내용 속에 선명하게 투영되야 한다.
이는 대학이 학업 역량을 평가하는 핵심 루브릭인 ‘가설 설정의 논리성’이나 ‘데이터 해석의 타당성’을 충족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전공과 관련한 끼워 맞추기식 활동보다 교과 본연의 가치에 충실할 때, 역설적으로 학생부의 진정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셋째, 지적 호기심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탐구의 확장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잘 설계된 수행평가는 하나의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활동 과정에서 직면한 한계점이나 새롭게 품게 된 의문을 제시하며, 다음 단계의 공부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때 학생부의 서사 구조는 ‘의문-탐구-심화’라는 입체적인 흐름을 완성하게 되며, 이는 입학사정관에게 학생의 멈추지 않는 ‘자기주도적 탐구 의지’를 각인시키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주의해야 할 안티 패턴(Anti-Pattern) : 흔한 실수를 경계하라
내신 변별력이 낮아지다 보니 많은 학생이 ‘진로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한 탐구를 진행하곤 한다.
경제 수업에서 억지로 의료 기술을 연결하거나, 수학 시간에 뜬금없이 문학적 감수성을 논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교과 성취 기준을 흐릴 뿐만 아니라, 학생의 기초 학업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진정한 융합은 해당 교과의 핵심 개념을 완벽히 소화한 상태에서 자신의 진로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딥다이브(Deep-Dive)’단계에서 발생해야 한다.
[실수 사례] 안티 패턴 세특 (정량적 나열 및 태도 위주)
‘정보 사회와 인권’ 단원에서 인공지능을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함. 인공지능의 정의와 역사, 장단점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정리해 발표함.
풍부한 시각 자료를 활용해 급우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평소 관심 분야에 대한 성실한 자료 조사 능력이 돋보임.
과제 제출 기한을 엄수하고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학습 태도가 우수함. 보고서 내용이 충실하고 발표력이 뛰어나 급우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으며, 기술 발전에 따른 편리함을 강조하는 등 성실하게 활동에 임함. (246자)
• 문제점
학생의 개별적 사유나 역량이 아닌 ‘성실함’, ‘발표력’ 등 추상적 태도에 치중함. 정보의 단순 요약일 뿐 대학이 원하는 학업적 깊이가 전혀 드러나지 않음.
✅ [모범 사례] 역량 중심 세특 (지적 고군분투 및 학술적 심화)
‘정보 사회와 인권’ 학습 중 알고리즘의 데이터 편향성이 초래할 ‘디지털 불평등’에 주목해 심화 탐구를 수행함. 학술지(RISS) 자료를 활용해 미국의 COMPAS 사례를 분석하며 기술의 중립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수업 시간에 배운 분배적 정의 관점에서 재해석함.
알고리즘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윤리 평가 지표’를 데이터 다양성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제언하는 등 고차원적 융합 역량을 보여줌.
탐구 종료 후 관련 법안의 입법 방향성에 대해 후속 탐구 의지를 표명하는 등 지적 호기심과 주도적 탐구 자세가 매우 탁월함. (261자)
• 장점 : 교과 개념(분배적 정의)을 도구로 사용함. 구체적 학술 자료(RISS)와 실제 사례(COMPAS)를 통해 탐구의 객관성을 확보했으며, ‘제언’과 ‘후속 탐구’를 통해 확장성을 입증함.
기록의 완성 : 탐구 과정의 서사적 복구와 전략적 소통
아무리 훌륭한 탐구를 수행했더라도 그것이 학생부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면 대입에서의 가치는 반감된다.
수행평가의 실질적인 마침표는 탐구 보고서 제출이 아니라, 그 이면의 과정을 복기하는 ‘연구 기록장’ 작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교사와의 전략적 소통에서 찍힌다.
연구기록장에는 주제 선정의 내적 동기부터 RISS나 DBpia등 전문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심화 문헌을 탐색한 치열한 과정이 담겨야 한다.
또한, 탐구 과정의 예기치 못한 시행착오와 극복 노력, 그리고 활동 종료 후 새롭게 싹튼 학문적 궁금증을 서사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정리된 로그북은 세특의 풍부한 소스가 된다.
특히 탐구 종료 후, 자신의 핵심 역량과 탐구 경로를 800자 정도의 '수행평가 요약지'로 정리해 교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는 교사가 500자라는 제한된 글자 수 안에서 학생의 개별성과 전문성을 한층 밀도 있게 담아낼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소통 전략이 된다.
단순히 “발표를 잘함”이나 “보고서 내용이 우수함”과 같은 결과 중심적 서술이 아니라, “특정 현상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관련 논문을 찾아 근거를 수집하고, 이를 교과 개념과 연결해 비판적으로 재해석함”과 같은 과정 중심적 기록이 학생부의 품격을 결정한다.

[실전 모범 사례] 통합사회 교과 수행평가 요약지
과목명 : 통합사회 / 관련 단원 : 정보 사회와 인권 / 사회 정의와 불평등
[1단계] 탐구 주제 (역동적 영역명 설정)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데이터 편향성 분석을 통한 '디지털 소수자' 인권 보호 및 윤리적 가이드라인 제언
[2단계] 탐구 동기 (교과 개념과의 연결)
수업 시간 '정보 사회의 인권 문제' 단원을 학습하며, 기술의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생김. 특히 인공지능이 채용이나 대출 심사 등 사회적 자원 배분 과정에 개입할 때, 특정 계층에 대한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신종 차별'의 위험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탐구를 시작함.
[3단계] 심화 탐구 과정 (학술적 고군분투)
• 문헌 조사 : 학술 데이터베이스(RISS)에서 '알고리즘 편향성'과 '디지털 인권' 관련 논문 2편을 찾아 주요 쟁점을 정리함.
• 사례 분석 : 미국의 재범 예측 프로그램(COMPAS) 사례를 통해 인종적 편향성이 결과값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확인하고, 이를 '사회 정의' 단원에서 배운 분배적 정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함.
• 시행착오 및 극복 : 초기에는 기술적 한계에만 집중했으나, 기술이 사회 구조적 차별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음을 깨달음. 이후 '인격권'과 '평등권'이라는 법적 개념을 도입하여 분석의 틀을 다변화함.
[4단계] 결과 및 역량 (역동적 동사 활용)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이 디지털 인권 보호의 핵심임을 도출함. 이를 바탕으로 기업과 정부가 준수해야 할 '알고리즘 윤리 평가 지표'를 3가지 측면(데이터 다양성, 결과 투명성, 이의제기권)에서 설계하고 제언함.
이 과정에서 복잡한 사회 현상을 교과 개념으로 재해석하는 비판적 사고력과 공동체 역량을 발휘함.
[5단계] 지적 확장 (후속 탐구 예고)
본 탐구를 통해 기술 윤리가 법적 제도보다 앞서 나가야 함을 깨달음.
활동 종료 후, 향후 '정치와 법' 교과를 통해 인공지능 관련 법안의 입법 방향성과 디지털 시민권 확립 방안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을 보임.
[모범 사례] 통합사회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세특)
‘정보 사회와 인권’ 단원 학습 중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데이터 편향성이 초래할 ‘디지털 불평등’에 주목해 심화 탐구를 수행함.
학술지(RISS)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의 COMPAS 사례를 분석하며 기술의 중립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분배적 정의 관점에서 재해석함.
알고리즘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윤리 평가 지표’를 3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제언하는 등 사회적 가치와 기술을 연결하는 고차원적 융합 역량을 보여줌.
탐구 종료 후 관련 법안의 입법 방향성에 대해 후속 탐구 의지를 표명하는 등 지적 호기심과 자기주도적 성취가 매우 돋보임.
교육적 본질로의 회귀와 미래를 위한 제언
동국대학교의 수행평가 가이드북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평가는 학생을 변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학생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성장을 자극하는 교육적 장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신 변별력이 약화된 시대, 학생들은 수행평가를 입시의 장애물이 아닌, 자신만의 학문적 색깔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수행평가의 전략적 재구성은 결국 ‘공부하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이다.
대학은 ‘무엇을 배웠는지’는 이제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등급으로만 확인하지 않는다.
이제 학생은 수행평가를 통해 그 지식을 ‘어떻게 다루고 확장하는 인재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이 과정을 성실하고 치밀하게 통과한 학생이라면, 원하는 대학 합격을 넘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인재로 우뚝 설 것임을 확신한다.

【지상범 소장 프로필】 컨설팅, 칼럼 내용 문의 카톡 : jsb1191@naver.com
"입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학생이 살아온 서사의 기록입니다.“
• 현) J SB 진로진학연구소 소장 / 한국창의인재육성재단 이사
• 전문 분야 : 학생부 종합전형 전략 수립, 수행평가 및 세특 재구성 면접코칭, 학습전략, 수시, 정시 학습전략
• 현) 교육 칼럼니스트(메트로신문, 청주일보) 및 입시 컨설턴트
• 청주 청원고, 대전 대성고, 장성고, 익산고 외 전국 100여개 명문고 특강 및 입시설명회 진행
• 전) 종로학원 본원 대외사업부 본부장, ㈜ 비상 공교육지원사업부 수시팀장, 강남 교육의 창 대표 강사
• 전) imbc 수능방송 출연 강사, e-case 인강 강사, ifirst. 사탐대표강사
• 전) 전국모의고사출제위원(중앙), 노스트라다무스 일반사회 집필(케이스)
• 전) 노량진 한샘, 비타, 비상에듀 러셀(메가스터디) 단과 강사 강남 대한국민, 대지, 목동 청솔, 대전 한샘, 제일, 대학, 대구 유신, 부산 케이스, 서전, 분당 중앙학원 재수 및 단과 강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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