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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고] 해양경찰 구조대원의 여름나기 단상(斷想)

by 청주일보TV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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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바다 위해 해양안전문화 의식과 국민 눈높이에 맞춰 구조 임무 완수에 최선

태안해양경찰서 구조대 팀장 경위 나종의

【청주일보】 태안해양경찰서 구조대 팀장 경위 나종의 = 추석연휴 기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도심을 벗어나 도시어부 마냥 바다낚시 손맛이나 조개 등 바다보물들을 캐는 갯벌 해루질 재미, 혹은 각종 어촌체험의 즐거운 힐링(healing)을 위해 바다를 많이 찾았다.

항상 느끼는 사실이지만, 즐거운 힐링과 낭만을 선사하는 바다 이면(裏面)에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어 짬을 내 펜을 들었다.

많은 사연들을 뒤로 한 채 선선한 바람이 가을중턱 추분(秋分)을 지나는 지금도 바다를 찾았다 

돌이키는 수많은 발길 뒤로 드리워진 경건한 생명의 위기 순간들이 종종 오버랩(overlap)되며 떠오르곤 한다.

“갯바위 고립자 발생! 구조대 신속 출동!” 어느 평온의 일요일 오후, 정적을 깨는 상황실 지령 벨소리와 함께 빨리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무전이 접수됐다.

긴급 출동에 나선 해경구조대 5명의 팀원들과 필자는 각자 구조장비를 챙겨든 채 모두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구조대 사무실에서 100미터 정도 거리에 계류되어 있는 구조정으로 전력질주했다. 

구조팀장인 필자는 고립자 인원, 위치 및 접근 거리, 물때 등 관련 정보 사항을 신속히 파악하는 동시에 현장 변수를 고려한 구조 방안까지 이미 머릿속에서 기계적으로 정리가 됐다.

냉혹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생명 위협 속에 초분(初分)을 다투며 초조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구조정 엔진 3대 모두를 전력 가동해 전속으로 현장을 내달렸다.

어망부이, 폐로프 등 해상 부유물과 저수심 장애물 등으로 인해 자칫 구조정 손상이나 구동 불가로 생명을 다투는 구조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는 만큼 전신의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의 끈을 한 순간도 놓치 못했다.

가끔 고립자 위치 정보가 중간에 바뀌면 탄식할 여유도 없이 침로를 신속히 재확인해 사고 현장으로 급 선회하기도 한다.

그날 사고 물때가 만조 1시간 전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 특성상 계속 바닷물이 들어차고 있어 고립자 안전이 더욱 우려스러웠던 상황이였다. 

긴급출동 10분만에 저 멀리 파도치는 바닷물에 갇혀 검은소 등골 남짓 크기 갯바위에 위태롭게 올라서서 낚싯대를 들고 손을 흔들며 구조를 기다리는 청년 3명이 아슬하게 보였다. 

“구조대 현장도착!” 상황실에 무전보고 즉시 현장 구조활동을 이어갔다.  주변 암초 산재로 인한 2차 사고 우려로 구조정 접근이 어려워 구조대원이 레스큐보드를 가지고 직접 입수해 구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태안해경구조대 나종의 팀장이 구조정 현측에서 익수자 구조현장을 지휘, 보고하고 있다. ©태안해양경찰서 제공

이미 구조 대원들은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상태로 팀장인 나의 지시 만을 기다렸다.

해상 입수 구조 대원들에게 고립자가 위치한 갯바위 접근 시 파도에 휩쓸려 갯바위에 부딪히면서 부상을 입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한 뒤 입수를 지시했다.

생명 구조를 위해 검은 바다에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동생뻘 아니 스무 살 정도 나이 차가 나니 삼촌 조카뻘 되는 후배들을 보는 순간, 과거 하늘 같은 선배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받으며 거친 바다에서 구슬땀 흘리던 시절이 엊그제처럼 스친다.  

이제는 어린 후배들에게 혹시나 돌발 변수가 생기는 건 아닌지 눈을 떼지 못하는 구조 팀장 위치에서 가슴 졸이는 입장이다 보니 쏜살 같이 지나간 세월에 격세지감(隔世之)을 느끼곤 한다.

‘파도에 휩쓸려 제대로 부딪혀 다치지는 않을까?’, ‘이동 중 고립자가 바다에 빠지지는 않을까?’하는 초조한 마음을 알아 주었을까?  지시를 받고 입수해 안전하게 접근한 구조 대원들이 고립자들에게 신속히 구명 조끼를 입히고 가져간 레스큐보드에 한 사람씩 눕혀 구조정까지 무사히 구조를 완료했다.  

구조 직전 갯바위에 발바닥을 긁혀 상처를 입은 한 청년에게는 얼마 전 배치된 신임 응급구조사가 응급처치까지 무사히 마무리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해양경찰 구조대원 6명 모두 각자 맡은 바 최선의 임무 수행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는 바다 위험과 공포로부터 소중한 국민을 구조했을 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보람을 느끼며 그날 피로가 모두 상쇄된다.  

그래서 필자는 바다가 짠 이유가 이러한 수많은 눈물과 짜릿한 감동의 사연 들이 함께 녹아든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 강하게 든다.

단적 구조 사례였기는 하지만 눈물보다 웃음과 감동이 넘치는. 안전하고 희망찬 바다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개개인의 해양 안전 문화 의식이 저 가을 하늘 만큼이나 드높아지길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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